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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크립토 트레이딩 레전드 17편] 5장 1편 — 파산을 서너 번 겪고도 시장의 원리를 남긴 남자, 제시 리버모어

5장 1편 — 4장에서 전설과 범인을 가르는 여섯 원칙을 정리했다. 이번 5장부터는 그 원칙을 실제로 몸에 새긴(그리고 종종 어긴) 인물들을 한 명씩 파헤친다. 첫 타자는 제시 리버모어. 파란만장한 생애와 그가 남긴 최소 저항선 개념을 정리한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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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크립토 트레이딩 레전드 17편] 5장 1편 — 파산을 서너 번 겪고도 시장의 원리를 남긴 남자, 제시 리버모어

4장에서 우리는 전설과 범인을 가르는 게 재능이 아니라 규칙이라는 걸 확인했다. 손절, 리스크 관리, 감정 통제, 추세 순응, 즉시 인정, 기록. 여섯 개 원칙까지 봤으니, 이제 궁금해질 차례다. 그 원칙을 실제로 몸에 새긴 사람은 누구였고, 그 원칙을 어겼을 때 어떤 대가를 치렀나.

5장부터는 인물이다. 첫 번째 무기는 제시 리버모어다. 1877년생, 1940년 사망. 지금 기준으로 보면 화석 같은 시대의 인물이다. 실시간 차트도, 온체인 데이터도 없던 시절에 오직 시세판과 감각만으로 시장을 읽었다. 그런데도 이 사람의 핵심 원칙 하나가 24시간 돌아가는 지금의 암호화폐 시장에서도 여전히 먹힌다. 그게 이번 5장을 리버모어로 여는 이유다.

파산을 서너 번 겪고도 시장의 원리를 남긴 남자

파산을 서너 번 겪고도 시장의 원리를 남긴 남자
파산을 서너 번 겪고도 시장의 원리를 남긴 남자

리버모어를 무결점의 천재로 포장할 생각은 없다. 그는 시장을 읽는 감각으로는 역사에 남을 인물이었지만, 사생활은 비극에 가까웠다. 이 균형을 빼먹으면 그에게서 배울 게 절반으로 준다.

14살이던 1891년, 보스턴의 한 증권사에서 시세판에 숫자를 받아 적는 보조 일을 시작했다. 주급 5달러짜리 자리였다. 그런데 이 소년은 단순히 숫자를 옮겨 적은 게 아니라, 그 숫자가 특정 방향으로 "몰리는" 패턴을 느꼈다고 한다. 그 감각을 밑천 삼아 당시 성행하던 소규모 사설 베팅소(버킷샵)에서 매매를 시작했는데, 너무 잘 벌어서 여러 곳에서 출입 금지를 당했다. 이 무렵, 그러니까 정식 직장을 그만두고 16살에 전업 투기꾼으로 나선 1893~94년경, 동료들이 그에게 "Boy Plunger(소년 투기꾼)"라는 별명을 붙였다. 14살에 시세판 앞에 앉은 것과 이 별명을 얻은 건 2년 정도 시차가 있는 셈이다. 짧은 인생 안에서도 그는 이미 두 단계를 거친 뒤였다.

스무 살 즈음 월스트리트로 진출한 뒤로는 영광과 몰락이 번갈아 온다. 대표적인 게 1907년 공황이다. 이때 그는 대규모 공매도 포지션으로 하루 만에 100만 달러를 벌었다. 그런데 이 대목에서 여러 매체가 종종 "하루에 300만 달러를 벌었다"고 뭉뚱그리는데, 실제로 확인해보면 이야기가 좀 더 정교하다. 하루 수익은 100만 달러였고, 이후 그의 멘토였던 J.P. 모건이 "이제 그만 눌러 달라"며 추가 공매도 자제를 요청했다. 리버모어는 그 요청을 받아들여 방향을 틀어 반등장에서 매수로 갈아탔고, 그 결과 순자산이 300만 달러까지 불어났다. 하루 수익과 그 이후 누적된 자산을 섞으면 안 된다. 이 구분이 리버모어를 이해하는 열쇠다 — 그는 한 방향으로 고집을 부리지 않고, 시장의 신호(그리고 신뢰하는 사람의 조언)에 맞춰 방향을 바꿀 줄 알았다.

1929년 대공황에서는 더 큰 그림을 그렸다. 1929년 초부터 100곳이 넘는 브로커를 동원해 조용히 대규모 공매도를 쌓았고, 봄에는 일시적으로 평가손이 크게 나는 구간도 있었다. 그러다 10월 대폭락이 터지자 약 1억 달러 순수익을 거뒀다. 월가 전체가 무너지는 와중에 혼자 역사에 남을 트레이드를 기록한 것이다. 이 한 방으로 그는 "월가의 큰 곰"이라는 별명(동시에 낙인)을 얻었고, 대중의 분노와 살해 협박까지 받아 경호원을 고용해야 했다.

여기까지만 보면 무결점의 승부사 같다. 그런데 리버모어는 살면서 서너 차례 전 재산을 날렸다. 정확히 몇 번인지는 자료마다 조금씩 갈린다 — 공식 파산 신청만 세는 쪽은 세 번(1901년, 1915년, 1934년경)으로 집계하고, 대중적으로는 네 번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. 어느 손실을 파산으로 셀지의 기준 차이일 뿐, 숫자 자체는 핵심이 아니다. 이 사람이 벌었다가, 크게 잃었다가, 다시 벌기를 반복했다는 사실이 핵심이다. 왜 매번 무너졌나. 자기 원칙을 자기가 어겼기 때문이다. 추세를 따라야 할 자리에서 "여기가 바닥이다"라며 역으로 베팅했고, 손절해야 할 자리에서 "조금만 버티면 돌아온다"며 눌러앉았다. 머리로는 알던 원칙을, 실전에서는 지키지 못한 것이다.

1940년 11월, 리버모어는 뉴욕의 한 호텔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. 빚이 남은 상태였다. 이 결말은 안타깝다. 다만 여기서 우리가 가져갈 교훈은 두 가지로 명확하다. 첫째, 전설도 자기 규칙을 어기면 무너진다. 앞서 4장에서 봤던 "아는 것과 지키는 것은 다르다"는 이야기가 이 사람의 인생에서 그대로 증명된다. 둘째, 그럼에도 그의 원칙 자체는 지금도 작동한다. 인간 리버모어와 원칙 리버모어는 분리해서 봐야 한다. 우리가 숭배할 건 사람이 아니라 원칙이다.

최소 저항선 — 시장이 말해주는 것을 듣는 법

최소 저항선 — 시장이 말해주는 것을 듣는 법
최소 저항선 — 시장이 말해주는 것을 듣는 법

리버모어의 트레이딩 철학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"최소 저항선(line of least resistance)"이다. 어렵게 들리지만 비유는 단순하다. 물은 가장 쉬운 길로 흐른다. 시장도 매 순간 위로, 아래로, 혹은 옆으로 갈지를 저울질하다가 한쪽으로 방향을 잡으면, 당분간은 그 방향이 가장 저항이 적은 길이 된다. 그의 트레이딩 철학을 담은 책에서 자주 인용되는 문장이 있다. "투기꾼이 자기만의 원칙을 끝까지 지킨다면 돈을 버는 게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— 최소 저항선이 스스로 드러날 때까지 기다렸다가, 테이프가 위를 가리킬 때만 사고 아래를 가리킬 때만 파는 것." 요지는 이거다. 방향을 예측하지 말고, 방향이 정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, 그 방향에 올라타라.

핵심은 "정해질 때까지"라는 태도에 있다. 리버모어는 목표가를 미리 정하고 파는 매매를 한심하게 여겼다. 왜냐면 시장이 당신이 상상한 그 가격에서 멈출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. 흐름이 살아있으면 목표가를 훌쩍 넘어 가고, 흐름이 죽으면 목표가 근처에도 못 가고 꺾인다. 목표가는 시장이 아니라 내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숫자다.

이 철학을 관통하는 통찰이 하나 더 있다. 큰 수익은 큰 움직임에서 나오고, 그 큰 움직임을 잡는 방법은 정교한 분석이 아니라 기다림이라는 것이다. 비트코인이 2만 달러에서 6만 9천 달러까지 갔던 국면을 떠올려보라. 그 사이 조정도, 공포도, 부정적인 뉴스도 수십 번 지나갔다. 매일의 차트 분석으로 그 전체 움직임을 다 잡을 수 있을까. 못 잡는다. 분석이 뛰어나서 큰 움직임을 다 잡는 게 아니라, 추세가 깨질 때까지 자리를 지킨 사람이 그 움직임을 다 가져간다.

이게 왜 대부분에게 어려운가. 인간의 뇌는 수익을 빨리 확정 짓고 싶어 한다. 10% 오르면 여기서 팔고 싶고, 20% 오르면 이제는 정말 팔아야 할 것 같고, 30%가 되면 이건 하늘이 준 기회니 얼른 현금화하자는 충동이 든다. 그래서 대부분은 작은 수익을 여러 번 챙기다가, 어쩌다 한 번 큰 손실을 맞고 통산으로는 마이너스가 된다. 리버모어의 접근은 정반대다. 손실은 짧게 자르고, 수익은 추세가 살아있는 한 끝까지 들고 간다. 열 번 매매해서 일곱 번 손절을 맞아도, 나머지 세 번에서 큰 흐름을 온전히 잡으면 전체는 플러스로 남는다. 이건 승률 게임이 아니라 비대칭 보상 게임이다. 승률이 30%여도 손익비가 충분히 크면 계좌는 우상향한다.

물론 반례도 짚어야 한다. 시장이 좁은 박스권에서 오르내릴 때 이 철학을 그대로 적용하면 오히려 손해다. 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시장에서 "곧 정해지겠지"라며 계속 진입하다 보면 손절만 반복해서 쌓인다. 최소 저항선은 방향이 있을 때 힘을 발휘하는 개념이지, 방향이 없는 시장에 억지로 적용할 개념은 아니다. 이 부분은 다음 파트에서 다룰 실제 비트코인 사례에서 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.

리버모어의 생애를 숫자로 다시 짚어보면 이렇다. 1907년 공황에서 하루 100만 달러를 벌고, J.P. 모건의 요청을 받아들여 방향을 바꾼 뒤 순자산을 300만 달러까지 불렸다. 1929년 대공황에서는 100곳 넘는 브로커를 동원한 공매도로 약 1억 달러라는, 당대 기준으로도 역사에 남을 순수익을 냈다. 이 숫자들이 나온 이유는 하나다 — 방향을 예측하려 하지 않고, 최소 저항선이 드러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방향이 꺾일 때까지 자리를 지켰기 때문이다. 그리고 같은 원칙을 스스로 어겼을 때, 그는 서너 차례 전 재산을 날렸다. 원칙은 옳았고 지금도 작동한다. 다만 그 원칙을 아는 것과 실전에서 지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싸움이라는 걸, 리버모어 본인의 인생이 증명한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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